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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미술시장/2018

천이페이 다시 읽기: 상하이의 옛 꿈은 지난 일이 되었나?

천이페이 다시 읽기: 상하이의 옛 꿈은 지난 일이 되었나?

雅昌专稿重读陈逸飞海上旧梦过时了吗[각주:1]




2018년 경매시장에서 잊혀 가고 있던 수많은 이름들이 다시금 대중의 시야에 들어오게 되었는데, 그중에서도 천이페이(

陳逸飛, 1946~2005)는 가장 의외의 인물이다. 왜냐하면 반 년 전에 그의 작품 <옥당춘난 玉堂春暖>(그림 1)이 베이징에서 7년 전 기록보다 배 이상 높은 1.495억 위엔(한화 약 2576,931만 원)에 거래되어 작가의 경매 낙찰 최고가 기록뿐 아니라, 중국대륙의 유화 작품 최고 경매가 기록을 새로 썼기 때문이다. 이 경매기록을 통해서 시장의 천이페이 작품에 대한 열기는 다시금 달아올랐고, 2018년 상반기에도 18점의 작품을 낙찰시켜 그 거래액이 1.65억 위엔(한화 약 2844,105만 원)에 달한다.


그림 1. 천이페이(陳逸飛), <옥당춘난 玉堂春暖>



그런데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는 점은 새로운 기록을 쓰기 약 5년 전에 천이페이는 사진화, 대필, 시대착오 등 각종 논쟁으로 곤혹스러웠고, 한동안 시장에서 C급으로 물러나 있었다는 점이다. 이러한 강렬한 전후의 대비는 우리에게 천이페이의 작품을 자세하게 살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그 지위가 복잡하고 예술적 조예가 독특한 이 작가는 오늘날, 혹은 중국 현당대예술사에서 어떤 위치에 놓여져야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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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술가와 상인 사이에서 동요하다


천이페이는 1972년에서 1979년 사이에 <개척자 开路先锋>, <황하 찬가 黄河颂>, <적기 찬가红旗颂> 등의 작품으로 베이징 전국미술전람회와 상하이 미술전람회장에서 여러 번 수상했고 그 중에서도 유화작품 <총통부 점령 占领总统府>1982, ‘1977년 이후 중대주제전국 일등상을 수상했다. 이로써 유명해진 그는 80년대에 미국에서 유학했고, 그의 작품에 녹아든 짙은 동방의 정취로 인해 미국에서도 성공을 거두어 국내보다도 국외에서 더욱 인정을 받았다.


그러나 1992년 귀국한 뒤 천이페이는 상인의 모습으로 자신을 드러냈다. 1995년에 모델회사를 설립했고, 자신의 명성과 작품 가격이 빠른 속도로 상승함에 따라 그의 상업제국 건설에 대한 야심도 나날이 커졌다. 그후 점차 환경예술, 드라마, 패션 및 출판 산업에 투자를 모집해 그룹회사를 설립했다. 천이페이가 자신의 예술적 이상을 야심찬 상업계획으로 전환시켰기 때문에 그의 영향력은 사회 각 분야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커질 수 있었다. 그는 한 사람의 예술가에서 독특한 문화현상이 되었고, 만인이 주목하는 대중의 스타가 되었다. 또한 고급 예술품 시장에서 환영받는 인물이 되었고, 늘 보통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으며, 그의 원대한 사업계획은 폭넓은 관심과 기대를 받았다


2005,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대중들의 무한한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로 인해 천이페이는 복제 불가능한 전설이 되었다. 유화의 테크닉에 대해 말하자면, 당대에 최고수준의 사실주의 거장이었다. 회화의 관념에 대해 말하자면, 도미하여 유학하는 바람에 그가 중국에서 당대예술 발전에 개입할 기회는 놓쳤으나 현대의 중국예술가 중에서 천이페이만큼 그 예술과 행동이 사회에 깊이 영향을 미친 작가는 없다. 예술상업의 거물은 어쩌면 천이페이에 대한 비교적 공평한 평가가 될 것이다. 예술가로서든 상인으로서든 천이페이는 이 두 수식으로부터 분리하여 다루어질 수 없으며, 그의 유일무이한 이런 특징이 그의 작품을 더욱 희소한 것으로 만들기 때문에 시장에서 그의 작품의 전망을 판단하는 데 있어 중요한 기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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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이페이 작품 가치 상승의 역사


천이페이 작품이 오늘날 지니고 있는 높은 가치는 결코 단번에 이뤄진 것이 아니며, 일급시장에서의 장기간에 걸친 대행판매와 이급시장에서의 부단한 촉진이 있었기에 탄탄한 기초를 시장에서 다질 수 있었다. 중국에서 유화시장이 본격적으로 형성되기 이전에, 천이페이는 대담하게 상업화를 시도했다.


2-1 해머갤러리와 말보로갤러리


19809월 천이페이는 도미하여 자비로 뉴욕대학 헌트캠퍼스에서 유학했다. 그는 졸업 후 뉴욕의 해머갤러리와 계약을 맺었고, 1983년부터 1988년까지 이 갤러리에서 4번의 개인전을 열었다. 그의 낭만 사실주의적 스타일은 미국 시장에서 환영을 받았을 뿐 아니라, 뉴욕타임즈 등 주류 매체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


그림 2. 천이페이(陳逸飛), <고향의 기억—솽촤오 家乡的回忆——双桥> (위 사진 속 그림)




해머갤러리와의 합작은 천이페이로 하여금 처음으로 상업적 성공의 맛을 보게 했다. 수향(水乡) 시리즈와 음악인물 시리즈는 이 시기의 대표적 작품이다. 1984년에 해머 부부는 방중하여 천이페이의 유화작품 <고향의 기억솽촤오 家乡的回忆——双桥>(그림 2)라는 작품을 중국의 지도자 덩샤오핑에게 선물했는데, 이는 천이페이의 이력에서 중요한 사건이 되었다. 그는 해외화랑에 의해 성공적으로 포장된 첫 번째 중국예술가였고, 이에 자극을 받은 많은 중국의 예술가들은 해외로 나가 기회를 찾고자 하였다.


1995, 천이페이를 오랫동안 흠모했던 영국의 말보로화랑이 그와 계약을 맺었는데 이는 말보로화랑이 아시아예술가와 계약한 첫 번째 사례였다. 1995년 말보로화랑은 천이페이의 작품을 베니스비엔날레에 출품했을 뿐 아니라, 1996년과 1997년 각각 상하이박물관과 베이징중국미술관에서 천이페이회고전을 개최했다. 말보로화랑과의 합작을 통해 천이페이의 명성과 시장에서의 인기는 발을 맞추어 상승했고, 수백 개의 작품을 판매할 수 있었으며 이에 따라 다수의 작품이 일류 컬렉터 수중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림 3. 천이페이(陳逸飛), <쉰양의 정취 浔阳遗韵>



2-2 최초의 경매시장 스타


천이페이는 1992년 귀국했는데, 앞서 언급한 두 해외화랑과 협력관계를 유지했고, 국내화랑과는 관계를 맺지 않았다. 한편으로는 당시 중국 내에 성숙한 상업화랑이 없기 때문이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가 중국 내에서의 명성에 기대어 주도적으로 자신을 찾아오는 구입자에게 충분히 작품을 판매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후 비공개 매매는 천이페이 작품 거래의 주요한 방식이 되었고, 그의 작품 시세 또한 이들이 주도하게 되었다. 당시 중국 내에서 유화 경매시장은 막 발전을 시작하려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1991, 중국 본토에서는 아직 유화경매가 열리지 않았고 홍콩 크리스티즈 가을경매에서 <쉰양의 정취 浔阳遗韵>(그림 3)137만 홍콩달러(한화 약 19,951만 원)에 거래되어 중국 유화작품 중에서 처음으로 백만 위안 이상에 거래된 작품으로 기록됐다. 1994년 차이나가디언은 중국 본토에서 처음으로 유화 경매를 열었는데, 천이페이의 <산지풍 山地风>286만 위엔(한화 약 49,298만 원)에 팔리면서 그해 유화 경매 출품작 중 최고가를 기록했다. 1997년에는 홍콩 크리스티즈에서 <양귀비꽃 罂粟花>387만 위엔(한화 약 66,707만 원)에 팔렸는데, 이는 작가가 세상을 떠나기 전 낙찰된 작품 중 최고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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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고효과가 가격폭등을 야기하다


천이페이의 작품 중 90년대에 경매시장에 나온 일부가 고가에 거래되면서 큰 반향을 불러 일으키기는 했지만, 2005년 이전에 경매시장에서 그의 작품 가격은 전체적으로 안정적으로 유지되었고 100만에서 200만 위엔 사이의 가격대에서 등락했다. 시세의 폭등은 2005에 나타났는데, 그가 세상을 떠나면서 사회적으로 거대한 동요가 있었고, 이로써 경매시장에서 그의 작품이 돌풍을 일으키게 된 것이다. 20051년 동안의 거래 총액이 1994년부터 2004년까지의 거래 총액보다도 더 높았다. 그의 사망은 사람들로 하여금 즉각 그의 작품에 주목하도록 만들었고, 천이페이 작품의 구입자들은 의심의 여지없이 호기의 도래를 의식하고 있었다. 양호한 거래성적 또한 그의 작품이 큰 시장가치를 지니고 있음을 증명했다. 이 때가 뉴욕 소더비에서 중국당대예술시장에 불을 당기기 일 년 전이며, 2006년과 2007년에는 그의 작품이 파죽지세로 경매장에서 팔려나갔다.


그림 4. 천이페이(陳逸飛), <천천히 걷다 踱步>



작품 <옥당춘난 玉堂春暖>이 처음으로 천만 위엔을 돌파했는데, 2006년에 1100만 위엔에 거래되었다. 2007년에만 천만 위엔 이상에 팔린 작품이 4점에 달한다. 1995년 소더비에서 128만 홍콩달러(한화 약 18641만 원)에 거래된 <황하송 黄河颂>2007년 차이나가디언 봄경매에서 그의 30배가 넘는 4,032만 위엔(한화 약 694996만 원)이라는 엄청난 가격에 팔렸다. 2008년에는 경제상황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가격대가 약간 하락했지만, 2009년에 <천천히 걷다 踱步>(그림 4)4,033.2만 위엔(한화 약 695,203만 원)에 거래되면서 최고가 기록을 새로 썼다.

 

2010, 그가 세상을 뜨고 약 오년 후, 천이페이 예술전이 상하이미술관에서 거창하게 열렸는데, 이것이 그의 작품의 시세를 올리는 데 기폭제가 되었다. 이 전시는 체계적으로 천이페이의 예술생애를 보여주면서 다수의 걸작들을 선보였고, 간접적으로 컬렉터와 미술시장에 어떠한 방향을 제시해 주었다. 전시가 끝난 뒤 <현악사중주 弦乐四重奏>, <이중주 二重奏> 등 몇 점의 중요한 작품들이 경매장에서 신기록을 세우며 낙찰되어 시장에서 그의 작품 가격대를 한 단계 더 올려놓게 되었다. 2011년 중국의 예술품시장이 전체적으로 양호한 양상을 보이면서 천이페이의 작품 시세 또한 최고조에 달했다. 그해 한 해 동안 거래된 작품의 금액만 3.8억 위엔(한화 약 65560만 원)에 달했는데 그중 최고가 작품은 두 번째로 경매장에 나온 <산지풍 山地风>(림 5)으로 8,165만 위엔(한화 약 1407,401만 원)에 거래됐으며, 구입자는 상하이 롱미술관의 설립자 류이치엔(刘益谦)이었다.


그림 5. 천이페이(陳逸飛), <산지풍 山地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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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만들기, 다시 오르는 시세


2010년 이후, 중국예술품 시장이 가격 조정기로 접어들면서 천이페이의 작품 시세 또한 약간 하락했다. 더불어 사실주의 유화에 대한 중국 내 구입자들의 열정도 조금 누그러졌으나 컬렉터들은 여전히 그의 작품을 팔기 아까워했다. 울렌스 부부가 컬렉션을 정리하면서 2013년 홍콩소더비에서 천이페이의 작품 <붉은 깃발 중 하나 红旗之一> 7,964만 홍콩달러(한화 약 1159,797만 원)에 거래되었으나, 이 외에는 특별이 주목할 만한 거래가 없었다. 특별한 화제거리나 자극제가 없었기 때문에 2012~2016에 그의 작품가는 하락했고, 시장에서 그의 작품을 볼 기회도 드물었다. 천이페이의 생전의 성공은 시대가 낳은 영웅의 것이었다고 한다면, 2017년 천이페이가 시장에서 다시금 주목을 받게 된 것은 영웅이 낳은 시대적 현상이라 하겠다.

 

그림 6. 천이페이(陳逸飛), <옥당춘난 玉堂春暖>



201712, 2006년도에 처음으로 천만 위엔이 넘는 금액에 거래되었던 <옥당춘난 玉堂春暖>(그림 6)이 차이나가디언에 출품되어 비교적 낮은 금액에서 경매를 시작했으나 예상을 깨고 1.495억 위엔(한화 약 2576,932만 원)이라는 고가에 거래됐는데, 이는 작가의 작품 중 처음으로 1억 위안을 넘긴 금액이었다. 이 작품의 구입자 또한 류이치엔(刘益谦)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시장의 천이페이에 대한 주목도가 다시 높아졌다. 2018년 봄 경매에서 <려인행 丽人行>, <밤꾀꼬리 소리 夜莺之声>, <어린시절 뛰어놀던 그곳 童年嬉戏过的地方> 등의 작품이 본토와 홍콩 모두에서 고가에 순조롭게 거래되었다. 올해 상반기의 그의 작품 거래 총액은 1.65억 위엔(한화 약 2844,105만 원)에 달하며, 이는 경기가 좋았던 2011년의 성적에 버금가는 결과이다. <옥당춘난 玉堂春暖>이 천이페이 열풍의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낸 것은 사실이나, 이 열풍은 오래 지속될 만한 것은 아니고, 앞으로 그의 주요 작품의 시장 출현 여부에 따라 이어지거나 끊어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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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작품이 가장 천이페이스러운가?


천이페이가 생전에 남긴 작품은 매우 많은데, 그중에서도 창작과 그 작풍의 변화가 자신의 인생경력만큼이나 복잡하기 때문에 지금 그의 작품에 특별하게 뚜렷한 맥락이 있다고 보기 어려운 실정이다. 어떤 매체의 보도에 따르면 그의 남동생 천이밍(陈逸鸣)이 세어 본 천이페이 작품의 수가 약 500점에 달한다고 하는데, 화랑이 유통시키는 작품수나 공개경매에 출품되는 수량을 보자면 전체수량이 500점 이상인 것으로 보인다. 이급시장에서는 100만 위엔 이상의 천이페이 작품이 전체 거래량의 70% 정도를 차지하나 이들이 전체 거래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97.6%에 달한다. 이로써 시장거래의 중심은 100만 위엔 이상의 작품들에 집중되어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그 중에서도 1,000만 위엔 이상의 작품 수는 34점이고 전체 거래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41.84%으로, 이는 천만 위안 급의 작품이 시장구조에서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크다는 점을 설명한다.

 

천이페이의 작품을 주제별로 나누어보자면 다섯 종류로 구분할 수 있다. 이는 홍색역사 시리즈수향풍경 시리즈음악인물 시리즈티베트의 풍토와 인정 시리즈, 그리고 고전 궁녀 古典仕女 및 상하이의 옛 꿈 海上旧梦 (천이페이가 감독을 맡아 1993년에 발표한 영화의 제목) 시리즈이다. 그가 시기별로 한 가지 스타일의 작품을 집중적으로 그린 것이 아니기 때문에, 각각의 시리즈에도 시간차가 있다


전체 수량의 측면에서 보자면 다음과 같다.


홍색역사 시리즈

 ●경매장에 가장 드물게 등장

 ●작품의 평균가는 1,234.5만 위엔(한화 약 21억 2,791만 원)

 수향풍경 시리즈 

 작품 수가 가장 많고 백만 위엔 이상의 작품 수도 이 시리즈에 몰려 있다. 

 ●그러나 천만 급의 작품은 한 점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평균가가 가장 낮다

 음악인물 시리즈 

 티베트의 풍토와 인정 

  시리즈

 가격이나 수량 모두에서 중간급에 위치

 ●음악인물 시리즈가 조금 더 상급이다

 고전 궁녀 古典仕女

 상하이의 옛 꿈 海上旧梦 

  시리즈

 수향풍경 시리즈보다 그 수가 좀 더 적다. 

 64.7%의 작품이 백만 위안 이상에 거래됐고천만 위엔 급의 작품 수도 여기에 가장 많다

 ●그러나 같은 스타일의 작품이라도 좋고 나쁨에 차이가 있을 뿐 아니라대필이나 중복 도식에 관한 유언비어를 책망하는 목소리도 항상 있기 때문에좋은 작품을 어떻게 감별해낼 것인지에 대한 확실한 근거 있는 종합적 판단이 요청된다.




홍색역사: 최고의 가치상승 잠재력


혁명낭만주의 유화는 천이페이의 출세작으로, 이 시리즈의 작품들은 대부분 작가가 35세 이전에 창작한 것으로, 그중 유명한 작품으로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개척자 开路先锋>

<황하송 黄河颂>

두폭유화 <붉은 깃발 중의 하나 红旗之一>(그림 7)

<홍기송 红旗颂>

<남북을 오가다 南来北往>

<샤먼대학의 루쉰 鲁迅在厦大>

<긴 밤에 글을 쓰다루쉰 写于长夜——鲁迅>

<천천히 걷다 踱步>

<총통부 점령 占领总统府>


이 작품들은 대부분 공공기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그중에서 일찍부터 시장에서 유통되고 있는 작가의 출세작 <황하송 黄河颂>은 2007년에 낙찰 최고가 기록을 세운 바 있다<천천히 걷다 踱步>는 상하이 롱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붉은 깃발 중의 하나 红旗之一>는 울렌스아트센터 소장품이었으나 2013년 홍콩 소더비에서 7,964만 홍콩달러(한화 약 1159,797만 원)에 거래되었는데, 이는 현재까지 경매장에 나온 홍색역사 시리즈의 작품 중 최고가이다. 천이페이의 홍색역사 회화는 그 희소성, 역사적 지위, 예술성으로 인해 작가의 예술생애에서 높은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특히 <붉은 깃발 중의 하나 红旗之一>는 최소한 다섯 또는 여섯 점의 가치를 합한 것보다 더 중요한 작품이고, 타이캉 생명보험 주식회사가 소장하고 있는 <황하송 黄河颂>은 이 시리즈의 작품 중 최고가 기록을 다시 쓸 수 있을 만한 작품일 뿐 아니라 작가의 작품 중 경매 낙찰 최고가 또한 갱신할 수 있을 것으로 평가되는 작품이다. 그러나 이 작품이 시장에서 유통될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그림 7. 천이페이(陳逸飛), 두폭유화 <붉은 깃발 중의 하나 红旗之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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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향풍경: 안정적인 가격


수향풍경 시리즈는 천이페이의 유화작품 중 그 수가 많은 종류로, 경매기록을 바탕으로 보자면 그의 작품 전체 거래량의 약 40%를 차지하며 가격은 대부분 100만에서 200만 위엔 사이이다. 이 시리즈는 1980년대 초부터 제작되었고 작가가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계속 창작되었기 때문에 유통되는 작품의 수량이 많고 희소성이 적다. 이 시리즈 중에서 최고가 작품은 20186월 베이징카운실옥션에서 2,127.5만 위안(한화 약 366,717만 원)에 거래된 1984년 작품 <어린시절 뛰어놀던 그곳 童年嬉戏过的地方>(그림 8)이다. 이 작품은 2015년 홍콩소더비 가을경매에서 428만 홍콩달러(한화 약 62,330만 원)에 거래되었다. 2018년에 이렇게 가격이 많이 오른 것은 2017년에 그의 작품들이 경매 최고낙찰가를 갱신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면 수향풍경 시리즈 작품들이 경매장에 반복적으로 등장하여 얻을 수 있는 수익은 그다지 많지 않다. 이는 비단 이 시리즈의 작품 수량이 많다는 이유 때문만이 아니라, 작품들의 도식이 중복되기 때문에 희소성이 없기 때문이며, 작품을 고를 때 진위여부와 창작연대 감정에 더욱 주의해야 하고, 작품을 만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림 8. 천이페이(陳逸飛), <어린시절 뛰어놀던 그곳 童年嬉戏过的地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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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인물: 고상한 단순함


음악인물시리즈는 천이페이가 80년대 중후기에 해머갤러리와 일하면서 창작한 작품들로, 주요 구성요소는 서양의 소녀와 클래식 음악 악기이다. 주요 작품으로는 

<이중주 二重奏>

<현악사중주 弦乐四重奏>

<플루티스트 长笛手>

<첼리스트 大提琴手>

등이 있다

1992년 귀국 후 작가가 이 시리즈 창작을 그만두었기 때문에 이 시리즈는 작가의 전체 작품수 중에서 10%정도를 차지할 뿐이고, 이 시리즈는 중국 내에서는 비교적 늦게 주목을 받았다. 2005년 전에 중국 내 경매장에서 이 시리즈 작품을 보기는 매우 어려웠다. 2007년 뉴욕소더비 가을경매에서 <첼로를 켜는 사람 拉大提琴者>(그림 9)1,781만 위엔(한화 약 306,991만 원)에 팔리면서 이 시리즈의 가격을 천만 위엔대로 올려놓았다. 2009년 가을, 이 시리즈 중에서 가장 중요한 작품 중 하나인 <플루티스트 长笛手>가 베이징한하이옥션에서 3,248만 위엔(한화 약 559,858만 원)에 거래되어 롱미술관의 소장품이 되면서 이 시리즈 작품들의 가격이 더 올랐다. 2010년 그의 회고전이 열려 중요한 작품들이 체계적으로 정리가 되면서 2010년 이후 이들의 오름세는 지속되었고 작가의 경매 출품작 최고가 기록을 새로 쓰면서 중요한 대부분의 작품들이 새 주인을 찾았다. 중국 내의 사람들에게 이 시리즈가 더욱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작품이 자아내는 고급스러움 때문이다. 특히 클래식 악기의 연주에 집중하면서 그와 하나로 융합되어 흑색의 배경 속에 있는 서양의 소녀들에게서 동양의 정취가 느껴지기 때문일 것이다. 심플하면서도 엄숙한 화면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고전문화에 대한 경외감과 동경심을 갖게 한다. 국 내에서 이런 종류의 다른 작가의 작품은 찾아보기가 어렵기 때문에 예술적인 가치에 있어서는 홍색역사 시리즈나 상하이의 옛 꿈 시리즈에 뒤지지 않는다.


그림 9. 천이페이(陳逸飛), <첼로를 켜는 사람 拉大提琴者>




9

티베트 주제: 층차가 분명하다


1988, 천이페이는 귀국하여 처음으로 티베트 북쪽과 간난현에 다녀왔고, 《티베트의 풍토와 인정》 시리즈 창작을 위해 소재를 모았다

이 시기엔

1990년  <티베트 장족의 소녀 藏族少女>

  <티베트 장족의 남자 어린이 藏族男童>

  <행복한 가정 幸福家庭> 등을

1994년  <산지풍 山地风>,

1995년  다시 티베트에 가서 

  <용안 龙眼>

  <티베트 장족의 그 사람 藏族人家>

  <아버지와 아들 父与子>

등을 창작했다

이후에는 이 시리즈 창작에 그다지 열중하지 않았지만, 티베트라는 주제를 작가가 그만 둔 적은 없었다. 후기 작품으로는 2002년의 <설경 雪景>2004년의 <샤페이루에서 霞飞路上> 등이 있다. 이 시리즈의 작품 수량은 많지 않지만, 작가는 이 시리즈를 창작할 때, 수향풍경 시리즈나 고전궁녀 시리즈와는 확연히 다른 방법을 채택했다. 세밀하고 부드러운 묘사가 아니라, 격정적이고 대범한 필치, 큰 색채덩어리로 티베트 장족 인민들의 소탈하고 순박한 진실된 생활을 그려냈기 때문에, 예술적으로도 새로운 의미가 있다. “상하이의 옛 꿈시리즈도 이 필법의 영향을 받았다.


이 시리즈의 작품 중 73점이 이미 경매에 나왔고, 그중 54점이 백만 위엔 이상에 팔렸으며 500만 위엔 이상에 팔린 작품도 16점이나 된다. 최고가 작품은 20118,165만 위엔(한화 약 1407,401만 원)에 류이치엔에게 팔린 <산지풍 山地风>으로, 오랫동안 작가의 작품 중 최고가 작품의 자리를 차지했다. 이 시리즈 작품의 소장가치는 비교적 높은 편인데, 주제가 작가의 특징을 가장 잘 나타내는 작품은 아니기 때문에 가치의 보증 및 증가 측면에서 생각하면 구매할 만한 가치가 있다.




10

고전궁녀: 복고미감


천이페이는 90년대에 귀국한 후 궁녀를 주제로 한 작품을 다수 완성했다. 이 시리즈는 1988년 시작되었고 주요 작품으로는 

<비파 琵琶>

<쉰양의 정취 浔阳遗韵>

<양귀비 꽃 罂粟花>

<저녁 연회 夜宴>

<서쪽 사랑채에서 달을 기다리다 西厢待月>

<려인행 丽人行>

등이 있다

이들 작품 모두에서 주인공은 중국 고대의 궁녀들이고 여기에 비파, 둥글부채, 구리거울, 새장, 화장대 등의 가구들을 배치하여 화려하고 세밀한 화면을 구성한다. 이로써 현대인들이 결여하고 있는 청아함, 느긋함 혹은 서글픈 고전적 함의를 전달한다. 수향풍경 시리즈와 마찬가지로 궁녀 시리즈 또한 작가가 꾸준히 작업을 진행했기 때문에 수향풍경 시리즈와 비슷한 특징을 지닌다. 도식의 중복성이 높고, 위작 감정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그림 10. 천이페이(陳逸飛), <려인행 丽人行>


이 시리즈의 경매시장에서의 평균 거래가는 452만 위엔(한화 약 77,911만 원)이고, 최고가 작품은 2018년 크리스티즈홍콩 봄 경매에서 8,335만 위엔(한화 약 1436,704만 원)에 거래된 <려인행 丽人行>(그림 10)으로, 전체적으로 수향풍경 시리즈보다 경매시장에서의 성적이 좋다. 최근 경매장에 다시 등장한 이 시리즈의 작품 수는 많지 않지만 전체적으로 그 수에는 등락이 있다. 초기 작품의 투자가치가 높은 것으로 보이는데, 90년대 중후기 이후에 창작한 궁녀 시리즈는 내용과 형식 및 기술 면에서 모두 큰 변화가 없다. 이 시리즈에서 진위 감정의 문제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작품의 정취가 감동을 주는지의 여부, 혹은 다른 방면으로 창의성이 있는지의 여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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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이의 옛 꿈: 마음을 사로잡는 눈빛


1993, 천이페이는 영화작품 <상하이의 옛 꿈 海上旧梦> 촬영을 완료하고 영화작품에서 일부 장면들을 차용하여 <황금 같은 세월 黄金岁月>, <옥당춘난 玉堂春暖>, <춘풍에 심취하다 春风沉醉> 등 옛 상해탄의 정취를 표현하는 작품들을 그려내고 이들에 《상하이의 옛 꿈》이라는 시리즈 제목을 붙였다. 이 시리즈의 작품들은 대부분 완성된 당해 연도에 판매되었다. <옥당춘난>2017년에 경매 신기록을 세우기 전에, <황금 같은 세월>2017ART021 아트페어의 말보로화랑에서 대표작으로 내놓았는데 당시 그들이 제시한 가격이 5,000만 위엔(한화 약 861,850만 원)이었다. 1998, 천이페이는 <상해탄 上海滩>,<꿈 많던 시절 多梦时节>,<부채춤 扇舞>등의 작품을 완성했다


이 시리즈는 작품 수량이 아주 적은데도 불구하고 명칭에 약간 혼란스러운 부분이 있다. 스타일과 정취의 측면에서 보자면 상하이의 옛 꿈 시리즈와 상해탄 모두는 옛 상해의 실속 없이 겉만 화려한 생활을 묘사하고 있기 때문에상해탄 또한 상하이의 옛 꿈 시리즈라고 불려도 무방하다. 이 시리즈는 약 10여점 있고, 몇몇 작품은 이미 여러 번 경매시장에 나온 바 있다상하이의 옛 꿈 시리즈는 작가의 궁녀를 주제로 한 작품들 중에서도 특히 중요한 작품들로, 후자가 전자의 창작의 근원이라 할 수 있다상하이의 옛 꿈 시리즈는 스타일의 운치나 회화적 기교 측면 모두에서 전환을 꾀하여 궁녀 시리즈의 울타리를 돌파하였고, 고전과 현대 사이에서 새로운 결합점을 찾아낸 작품들이다. 특히 가장 초기에 창작된 세 작품은 예술적 전환이나 조예 모두의 관점에서 가장 높은 가치를 지니고 있기에 경매장에서 최고가 신기록을 이들이 갱신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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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이페이의 상하이 컴플렉스 


컬렉팅의 지리적 분포를 살펴보자면 작가가 미국과 유럽의 두 화랑과 십여 년 간 계약관계를 유지했고, 홍콩의 경매장에서 많은 작품이 거래되었기 때문에, 그의 작품을 구입하는 주요 컬렉터들 또한 유럽과 미국, 홍콩, 동남아 지역 등에 골고루 퍼져 있다. 그가 상하이로 돌아와 창업한 이후에는 중국 본토의 경매시장에도 그의 작품이 안정적으로 출품되기 시작했는데, 이러한 흐름은 그가 세상을 떠난 뒤 몇 년 동안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대도시 경매사에 출품된 작품 수량을 따져보면 베이징에 40.6%, 상하이와 항저우가 29.3%, 홍콩이 17.8%를 차지하며 이 세 지역이 천이페이 작품의 주요 거래지라 할 수 있다. 현재 최고가 탑 10의 명단 거래지를 살펴보면 7점이 베이징, 3점이 홍콩이다. 본토에서 연이어 그의 작품 경매가 기록이 새로 쓰이면서, 베이징과 상하이를 중심으로 본토 시장이 작품 거래의 중심이 되고 있다. 더욱이 본토 컬렉터들의 그의 작품에 대한 관심이 어느 정도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이러한 추세 또한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매체에 보도된 내용을 바탕으로 최근에 그의 작품을 구입한 사람들을 살펴보자면 상하이 롱미술관으로 대표되는 상하이의 컬렉터들이 의심의 여지없이 천이페이의 가장 충실한 지지자들임을 알 수 있다. 류이치엔은 2009, 2011, 2017년에 걸쳐 경매 최고가 기록을 새로 쓴 당사자이며, 그로써 이후의 작품 시세를 바꾸어놓았다고 할 수 있다. 한편 일찍이 해외로 유출된 작가의 대표작품 중에서 경매가 아닌 다른 경로를 통해 상하이의 컬렉터 수중에 들어간 작품들도 있다. 이러한 현상의 원인은 천이페이의 인생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상하이 콤플렉스(그리워하는 마음) 때문일 것이며, 상하이라는 도시가 그곳에서 자란 이 작가를 높게 평가하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천이페이 작품의 미학은 외국인이 많이 살았던 상하이의 모던함과 웅장함, 화려함 속에서 다시 태어난 것으로, 수십 년 동안의 전쟁과 사회의 변천 속에서 잊혀 간 전통이 그 골자이다. 그는 중국의, 혹은 상하이의 문화적 단층을 보여준 것이며, 어떤 상상을 통해 옛날을 회상하는 내용으로써 그것을 채워나갔다. 이렇게 옛 상하이의 분위기를 섞어 놓고, 미국의 취향 또한 어느 정도 녹아 있는 작품이 결국 상하이로 되돌아온 것이기 때문에, 상하이의 가장 지명도 있는 미술관에서 이들을 전시한 것은 가장 상징성 있는 이벤트였고 가장 훌륭한 귀착점이었다고 할 수 있다.




십여 년 동안의 정화와 재인식을 통해 천이페이의 예술과 시장가격 및 그의 전설적 인생 모두는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구간에 위치하게 되었다. 그의 인생은 예술과 상업 사이에서 항상 동요했으며, 이러한 발버둥침은 그의 여러 예술작품 시리즈 및 큰 비전 속에 면면히 퍼져있다. 따라서 작품 가치의 영역 또한 비교적 명확하게 변화했다. 가장 높은 가치를 지니고 있는 분야는 예술이며, 이는 그의 작품 창작 과정에서 나타난 확장성 및 전환이 지니는 의미가 깊기 때문이다. 이는 작가가 전심전력하여 내놓은 걸작들에 깃들어 있다. 보통의 작품들은 비록 천이페이의 이름표를 달고 있기는 하지만, 하나의 상품과 마찬가지로 소비품에 지나지 않는 것일지 모른다. 각 시리즈의 가치 판단에 대해 말하자면, 수량이 가장 적은 《홍색역사 시리즈와 상하이의 옛 꿈 시리즈가 가장 높은 투자 및 소장의 가치를 지녔다고 할 수 있겠다. 이미 그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는 컬렉터에게는 장기간 작품을 소장하는 것이 좋겠다는 조언을 하겠다. 비교적 큰 자본을 들여 작품을 구입하고자 하는 새로운 컬렉터들에게는 작가의 작품 중에서도 가장 좋은 작품에 투자할 것을 권한다. 이러한 작품들은 약 20여 점밖에 없으며, 가격은 3,000만 위엔(한화 약 517,110만 원) 이상이다.









  1. 이 보고서는 중국 미술품 경매 시장에 관해 보도된 소식(2018년 8월)을 발췌 및 요약 정리한 것이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 출처를 참고할 것. 소식의 자료 제공 및 원문 번역자는 김새미(베이징사범대학 철학학원 미학전공 박사과정). 刘龙, “천이페이 다시 읽기: 상하이의 옛 꿈은 지난 일이 되었나?”; https://news.artron.net/20180807/n1016101.html.(2018. 8. 7)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