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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미술시장/2020

모작을 전시하는 미술관

모작을 전시하는 미술관[각주: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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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이 자신들의 소장품에 모작이 존재한다는 것을 나서서 밝히는 일은 매우 드물다. 그러나 루드비히 미술관(Museum Ludwig)이 이번에 대중에 모사작을 전시하기로 하면서 전례없는 전시가 기획되었다. <루드비히 미술관 컬렉션의 러시아 아방가르드: 원작과 모작(Russian Avant-Garde at the Museum Ludwig: Original and Fake)> 전은 20세기 초반, 러시아의 급진적인 미술운동을 통해 등장한 미술품들을 선보인다. 이 전시에 등장하는 작품들은 이전에 카지미르 말레비치(Kazimir Malevich), 알렉산더 로드첸코(Alexander Rodchenko), 나탈리야 곤차로바(Natalia Goncharova) 등의 유명한 러시아 아방가르드 미술가들의 작품으로 알려졌었으나 최근 새로이 실시한 연구에 따라 모작인 것으로 밝혀진 작품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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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수십 년 동안 모작 또는 가작의 존재는 미술관 뿐 아니라 미술시장을 매우 곤란하게 만들어왔다. 따라서 이번 전시는 러시아 아방가르드 미술품의 구매, 판매, 수집과정에 산재한 위험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 루드비히 미술관은 초콜렛 생산업의 대부호인 페테르 루드비히(Peter Ludwig) 1970년대, 자신의 소장품을 기부하면서 설립되었으며, 서유럽에서 가장 방대한 러시아 아방가르드 미술품 소장목록을 지닌 것으로도 유명하다. 루드비히와 그의 부인인 아이린 루드비히는 일생 동안 러시아 아방가르드 미술품의 수집에 열을 올렸으며, 2010, 아이린 루드비히가 사망하면서 그가 소유하고 있던 약 600여 점의 러시아 아방가르드 미술품 또한 해당 미술관으로 양도되었다.


이중 약 100여점의 회화가 이번 연구대상 목록에 올랐으며, 현재까지 연구된 49점의 작품 중 22점이 모작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연구자들은 이 작품을모작'이라고 칭하는 것에는 조심스럽다. 법적인 차원에서는 이 단어가속이기 위한 의도를 가지고 만들어졌음'을 의미하는데, 이는 미술품 전문연구를 통해 밝혀낼 수 있는 사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는 10월 초부터 내년 1 3일까지 열리게 될 이번 전시는 개최 이전부터 이미 법적인 공방에 휩싸였다. 지난 8, 루드비히 미술관에 약 400여점의 회화를 판매한 스위스의 그무르진스카 갤러리(Galerie Gmurzynska)는 전시 개최 이전에 루드비히 미술관이 실시한 연구를 공개하라는 내용의 소송을 걸어왔다. 루드비히 미술관이 위치한 쾰른 시 법원은 해당 고소를 취하하면서 미술관의 손을 들어주었다.


이번 전시에서 가작인 것으로 밝혀진 작품들로 소개될 미술품의 다수는 루드비히 미술관이 그무르진스카 갤러리를 통해 구입한 것이어서 논란이 가중되고 있다. 뉴욕에도 분점을 두고 있는 유명한 갤러리인 그무르진스카 갤러리의 대표 크리스티나 그무르진스카(Krystyna Gmurzynska)는 한 인터뷰에서 루드비히 미술관에서 진행한 연구의 내용이나 그 적합성이 완전히 공개되기 이전에 전시를 개최하는 것은 불합리한 처사라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그무르진스카 갤러리가유명한 러시아 아방가르드 미술운동사조 전문가들과 함께 작업하고 있으며, 우리가 55년 동안 쌓아온 노력에 대한 작은 존중을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시간이 흘러 당시 연구자들의 실수가 발견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연구 결과를 제대로 공개하지도 않은 상황에서는 판단이 불가능하다"며 루드비히 미술관 측에 불만을 표했다.


루드비히 미술관의 부관장이자 이번 전시의 큐레이터 중 한 사람인 리타 컬스팅(Rita Kersting)은 루드비히 미술관의 이번 연구조사가 미술품의 진품 감정의 문제에 있어 다른 문화예술기관 및 미술품 수집가들을 도울 수 있게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루드비히 미술관은 학술적인 기여와 새로운 연구 결과들에 매우 열려 있다"연구는 절대 끝나지 않는 것이다"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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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러시아 아방가르드 미술품의 진품 여부 감정은 감정가의 견해에 크게 의존하고 있었다. 그러나 루드비히 미술관은 대상 작품을 미술가의 다른 작품들과 비교해 보는 방법 외에도 작품의 소유이력을 확인하며, 정밀 과학실험를 통한 분석 또한 병행하고 있다. 보존전문가인 페트라 만트(Petra Mandt)가 이끌고 있는 미술관의 연구진은 적외선, 자외선, X-레이 등의 테스트, 현미경 실험를 통해 작품을 분석하고, 화학 분석과 탄소를 이용한 연대 측정법도 도입하고 있다.


루드비히 미술관은 이번 전시에서 루드비히가 1985년 그무르진스카 갤러리로부터 구입한 올가 로자노바(Olga Rozanova)의 입체파 회화의 특징이 드러나는 <풍경(형태의 해체)(Landscape(Decomposition of Forms)>(1913)를 이 작품과 매우 유사한 양식으로 그려진 작품이자, 마드리드의 티센-보르네미사 미술관(Thyssen-Bornemisza Museum)으로부터 대여해온 로자노바의 <거리 위의 남자(부피에의 분석)(Man in the Street(Analysis of Volumes)>(1913)와 함께 전시한다. <풍경>에 대한 루드비히 미술관의 연구를 통해 이 작품의 고정에 쓰인 재료에 포함된 합성 폴리에스테르 섬유는 1913년에는 상용화가 되어 있지 않았으며, 물감 재료의 화학적인 구성도 같은 시기 로자노바가 사용하던 것과는 차이가 있음이 확인되었다. 이에 따라 연구진은 루드비히가 그무르진스카 갤러리로부터 구입하여 루드비히 미술관의 소장품에 들어온 해당 작품이 익명의 화가에 의해 모사된 작품이라고 결론지었다.


그무르진스카 갤러리의 대표는 실험실의 연구 데이터를 보기 이전에는 이 결론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겠다고 거듭 밝혔다. 그는우리는 기술 실험 결과도 보지 못했으니 아무런 판단도 내릴 수 없다"티센-보르네미사 미술관에 비슷한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는 건 이미 알려진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이와 함께 그는 자신의 갤러리를 분노케 하는 지점은 바로 전시의 제목에모작(fake)”이라는 단어를 포함했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그는 루드비히 미술관이러시아 아방가르드 미술을 궁지에 몰아넣고 있으며 이는 몰가치하고 비전문적인 행위이다"라고 비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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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아방가르드 미술운동을 통해 등장한 미술품의 진품 여부를 둘러싼 논쟁이 멈추지 않는 것은 러시아의 역사와 관련이 깊다. 1920년대 이들 전위미술가들은 소비에트 연방의 검열을 겪었으며 스탈린이 강력한 정치적 압제로 권력을 사로잡은 1930년대가 되자 이들의 작품은 대중으로부터 자취를 감추었다. 소비에트 연방으로부터 온 미술품이 서구의 미술시장에 등장한 것은 1960년대로, 다수의 작품이 이미 오랜 기간 동안 전시가 금지되어 있었기 때문에 대부분 출처나 소유자에 대한 관련 문서나 보증서류가 미비한 상태로 거래되곤 하였다. 이번 전시의 카탈로그 작업에 참여한 한 러시아 아방가르드 미술운동 연구 프로젝트의 책임자인 콘스탄틴 아킨샤(Konstantin Akinsha)이와 같은 조건에서는 모작이나 가품이 등장하기 쉽다"고 적었다.


해당 이슈가 미술 시장에 지닌 여파는 매우 크다. 2008, 말레비치의 회화가 소더비 경매에서 60백만 달러(한화 약 762억 원)[각주:2]에 거래되었으며, 현재 가장 값비싼 여성 화가로 알려진 곤차로바 역시 같은 해 크리스티 경매에서 11백만 달러(한화 약 113 7,400만 원)[각주:3]에 거래되었다. 그러나 이후 몇 년 간 계속해 작품의 진품 여부가 문제시되면서 해당 사조의 미술품을 구매하려는 이들을 불안하게 하고 있다. 2018, 겐트의 순수미술박물관은 몇몇의 딜러와 전문가들이 전시에 출품된 작품들의 진품 여부가매우 불확실하다(highly questionable)”는 견해에 따라 러시아 아방가르드 회화 전시를 중단하였으며, 당시 박물관장은 사임하였고 벨기에 경찰은 사건의 진위를 계속 수사 중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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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드비히 박물관의 이번 연구조사의 과학실험 디렉터인 만트는 “[이번 전시를 개최함에 있어] 작품 대여를 거절 당할까봐 걱정했었지만, 오히려 정반대라는 점이 놀라웠다. 많은 사람들이 지금까지 금기시되어 온 [작품의 진품 또는 원작 여부]이슈에 대해 공개적으로 논의하고 싶어하는 것이다. 놀라운 변화이다"라고 말했다.


마드리드의 티센-보르네미사 박물관과 테살로니키의 모무스 현대미술박물관(MOMus Contemporary art museum)은 이번 전시에 루드비히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모조품' 옆에 전시될 진품을 대여해주었다. 


미국 메사추세츠 주 하버드 대학 미술관 중 하나인 부쉬-라이징거 미술관(Busch-Reisinger Museum)은 루드비히 미술관이 소장 중인 리시츠키(Lissitzky)의 작품이 작가의 것이 아닌 것으로 보이는 와중에, 자신들이 소장 중인 리시츠키의 <Proun 12E>에 대해 정밀 연구에 들어가기도 했다. 이들은 향후 루드비히 측 연구진이 비교분석할 수 있도록 연구 결과를 제공하겠다고 말했다.


부쉬-라이징거 미술관의 근현대미술 담당자인 리네트 로스(Lynette Roth)는 작품을 쾰른에 직접 보내고 싶지만 현재 팬더믹의 위기 상황에서는 작품 운송이 쉽지 않다고 밝혔다. 그는 루드비히의 이번 전시가 미술계의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매우 중요한 전시라고 평가하며이와 같은 전시는 학술적인 연구를 기반으로 하며 나아가 학술연구를 발전시키기 때문에 우리와 같은 대학 부설 미술관에는 매우 반가운 전시"라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루드비히 미술관의 관장인 일마즈 지비오(Yilmaz Dziewior)는 가작이나 모작 또한 일종의참조 대상으로서 교육적인 목적 하에서유용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가작으로 밝혀진 소장품들은 이번 전시 이후에는 대중들에게 공개하지 않겠지만, 소장목록에서 지우진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미술관의 부관장이자 이번 전시의 큐레이터인 컬스팅은 루드비히 미술관이 미술관으로서의 책임을 다하고 있으며, 가작이 넘쳐나는 미술 시장에서 작가들의 작품을 보호하기 위한 노력에 힘쓰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이 분야에는 서로 다른 이익을 추구하는 전문가들이 매우 많다", 이러한 환경에서미술관이야 말로 상업적인 이득이 아니라 학술적인 가치를 위해 연구를 지속, 발전시켜야 하는 기관이다"라고 말했다.






  1. 이 보고서는 글로벌 시장에 관해 보도된 소식을 발췌 및 요약 정리한 것이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 출처를 참고할 것. 소식의 자료 제공 및 원문 번역자는 박정선(파리 소르본 4대학 재학). 이 소식의 출처는 Catherine Hickley, ‘A Museum Puts Its Fakes on Show', 「New York Times」, 2020.9.30. https://www.nytimes.com/2020/09/30/arts/design/museum-ludwig-fakes-russian-avant-garde.html?auth=login-google&searchResultPosition=6 [본문으로]
  2. 한화는 2008년 11월 3일 최종고시환율(매매기준율)을 적용하였다. [본문으로]
  3. 한화는 2008년 6월 24일 최종고시환율(매매기준율)을 적용하였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