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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전 동안 미국의 프로파간다를 선전하기 위해 미술가들도 모르는 새에 그들을 이용한 MoMA와 CIA

냉전 동안 미국의 프로파간다를 선전하기 위해 미술가들도 모르는 새에 그들을 이용한 MoMA와 CIA[각주: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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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정부가 1947 CIA를 설립할 당시, 이들은 기관 구성에 친 미국적 메시지를 퍼뜨리는 심리전의 일환을 담당하는 프로파간다 자산 평가 부서(Propaganda Assets Inventor)를 포함시켰다.” 해당 구절은 제니퍼 다잘이 펭귄 출판사에서 발간하는 새 저서인 『아트큐리어스: 지금까지 몰랐던, 조금 이상한, 괴상하리만치 멋진 미술사 내의 이야기들(ArtCurious: Stories of the Unexpected, Slightly Odd, and Strangely Wonderful in Art History, Penguin Books, 2020)』에 포함된 구절이다. 이 책에서 다잘은 정보기관이 추상 미술을 이데올로기 전쟁을 위해 활용한 방식을 다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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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전 당시 CIA가 미국의 추상 표현주의의 선전에 직접 나선 것을 비밀에 부친 까닭은 소련연방에 대한 성공적인 심리 및 프로파간다전을 수행하기 위한 이유에서 뿐만 아니라, 작전'에 자신들도 모르게 참여하게 된 미술가들을 속이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전 정보국 첩보원으로 활동했던 제임슨(Jameson)에 의하면다수의 추상 표현주의 예술가들은 CIA에 대한 신의는 커녕 정부에 대한 믿음도 갖고 있지 않은 사람들이었다".


실제로 바넷 뉴먼(Barnett Newman)을 비롯한 다수의 미술가들은 스스로를 무정부주의자로 칭했으며, 특히 무정부주의에 깊이 빠졌던 뉴먼은 아나키즘의 발전에 큰 영향을 미친 러시아의 표토르 크로포트킨(Peter Kropotkin) 1899년 작 『한 혁명가의 회상(Memoirs of a Revolutionist)』의 1968년 재판본에 서문을 쓰면서, 무정부-공산주의자인 크로포트킨이 자신의 삶과 작품활동에 미친 영향에 대해 언급하기도 하였다. 마찬가지로 유명한 추상표현주의 화가인 클리포트 스틸(Clyfford Still)이나 헬렌 프랑켄탈러(Helen Frankenthaler)에게 정부의 활동에 당신들의 작품을 활용해도 되겠느냐 묻는다면 당연히 그 답은절대 안된다"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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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은 상황에서 CIA가 택한 방식은 일종의 거리두기 방식이었다. 정보원들은 미술가들이나 실제 전시로부터는 23단계 정도 거리를 두어 정부로부터의 지시나 자금공급이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방식으로 일을 진행하였다. 이를 위해서는 미술 재단이나 미술가들 그룹, 특히 박물관 등의 협조를 이끌어내야 했다. 박물관의 협조가 중요했던 것은 특별전이나 행사를 꾸리고 소장품 목록에 추상표현주의 작가들의 작품을 올리는 일과 직접적으로 연관이 되기 때문이었다.


기관들로부터 협조를 이끌어내는 일은 CIA 1950년 개설한 미술 부서인문화적 자유를 위한 의회(Congress for Cultural Freedom; CCF)가 도맡았다. 이 의회가 CIA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사실은 이로부터 16년이 지난 1966년에서야 밝혀졌다. 당시 특정 미술관이나 미술 재단이 추상 표현주의를 지지하고 선전하는 배후에 정부가 있을 것이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CIA 산하(당시에는 그 정체가 숨겨져 있었지만) 미술 기관인 CCF와 가장 긴밀하게 협업했던 것은 바로 뉴욕 현대미술관 모마(Museum of Modern Art; MoMA)였다. 이 과정에서는 정치인, 자선사업가이자, 향후 제럴드 포드(Gerald Ford) 대통령 정부의 부통령으로 위임하게 넬슨 록펠러(Nelson Rockefeller)가 깊이 개입하였다. 록펠러의 모친은 뉴욕 현대미술관의 공동 설립자였으며, 그는 미술관을엄마의 미술관(Mommy’s Museum)’이라 부른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라틴아메리카 지역의 정보국 담당자로 일한 적이 있었고, 따라서 이미 정보국의 활동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록펠러는 당시 뉴욕 현대미술관의 이사회 장이었으므로 그가 CCF의 활동에 참여하는 것은 그들에게는 매우 이상적이었다. 이 협업으로부터 1958-59년 동안 세계 각지의 미술관에서 열렸던 미국 추상표현주의 미술의 기념비적인 전시 《새로운 미국의 회화(New American Painting)》가 탄생하였다.


1958 3 11, 미술관 측이 발표한 언론 보도 내용에는 이 전시가국제적인 요청에 따라 기획되었다"고 적혀 있어 읽는 이로 하여금 마치 이미국 회화의 발전된 양식"에 대한 국제적인 호응이 해당 전시를 가능케 하였다는 인상을 준다. 이 보도 내용에는 전시가 정보국의 지도편달에 따라 기획되었다는 내용은 어디에도 암시되지 않았다. 《새로운 미국의 회화》 전은 1년 동안 바젤, 밀라노, 베를린, 브뤼셀, 파리, 런던 등 유럽 내 주요도시에서 순회 개최되었다. 이 도시들에는 당시 미국에 우호적인 정부가 들어서 있었으며 따라서 이들 도시에서 전시를 개최하는 미국의 의도에는 냉전 기간에 미국의 문화적 우월성을 동맹국에 알리고, 서로의 사이를 돈독하게 하는 것까지를 포함하고 있었다.


당시 이 전시에 대한 반응은 매우 다양했다. <타임즈(Times)>지의 런던 부서는 테이트 갤러리에서 전시되고 있는 미국의 작품들은지금까지 우리가 봤던 것들 중에서도 최고이며, 어째서 오늘날 미국이 지금껏 파리가 지배해온 미술계를 물려받을 후계자, 또는 그들의 지위에 대한 도전자로 여겨지는지를 알 수 있게 해준다"라고 높이 평가했는가 하면, 프랑스의 미술평론가인 조르주 부다이유(Georges Boudaille)는 전시된 회화들이 기이하게 어둡고, 파악하기 힘들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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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새로운 미국의 회화》 전이 런던의 테이트 갤러리에서 열리게 된 과정은 CIA의 산하기관 CCF가 일종의 거리두기 방식을 통해 문화예술계에 영향을 미친 사례로서 접근하기에 적절하다. 이 전시가 1959 1, 파리의 국립현대미술관(Musée national dart moderne)에서 개최되었을 때 테이트 갤러리의 담당자들은 전시를 방문하고 매우 만족하여 런던에서도 해당 전시를 치룰 수 있길 바랐으나, 그 비용이 감당 불가능할 정도의 금액이라 포기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그러나 그때 마침 줄리우스정키' 플라이쉬먼(Julius “Junkie” Fleischmann)이라는 이름을 가진 자칭 미술애호가인 미국인 백만장자가 나타나 런던에서의 전시 개최에 필요한 금액을 지불하였다.


외국에서 열리는 미술 전시를 위해 거액을 기부할예술 애호가'가 과연 존재할 수 있을까? 오늘날 밝혀진 내용에 따르면 테이트 갤러리에서의 전시를 가능하게 한 거액의 돈은 플라이쉬먼의 개인 금고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며, 파필드 재단(Farfield Foundation)라는 재단을 통해 플라이쉬먼에게 지급된 금액이었다. 파필드 재단은 겉보기에는 기부재단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CCF의 업무 수행을 보조하는 기관이었다. 테이트 미술관 측에서는 당시 이런 사실을 알지 못했으며 전시의 관람객들도 당연 모를 수밖에 없었다. 미술가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렇듯 정보국 관리자들은 부유한 인물을 찾아가 이러저러한 목적에서 재단을 설립하고자 하는데 비밀을 유지해주고, 재단의 운영자로 이름을 올려주겠느냐 묻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재단 설립은 매우 간편하고 편리한 방법이라고 말한다.


사실 넬슨 록펠러와 마찬가지로 줄리어스 플라이쉬먼 역시 뉴욕 현대미술관의 관리이사회 멤버로서 미술관과 직접적인 연관을 지니고 있었다. 이와 같이 냉전 당시 많은 미술관 관계자들이 정부와 정보국의 문화전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한 것으로 전해진다. CIA와 뉴욕 현대미술관 사이의 관계는 여전히 공식적으로인정된 바는 없으며, 많은 이들이 이들 사이의 활동에 대한 진위여부를 두고 공방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뉴요커(New Yorker)>지의 루이 메넌드(Louis Menand) 2005년 기사에 적은 것처럼, 정보국과 미술관 사이의 협업은 굳이 문서화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들은 서로의 가치관을 공유하고 있는 자들이었기 때문이다. 뉴욕 현대미술관의 문화 엘리트들에게는 공산주의를 근절하고 미국의 국가이미지를 포장하며, 예술을 찬미한다는 것은 당연히 수행해야 할 과제로 여겨졌던 것이다.







  1. 이 보고서는 글로벌 시장에 관해 보도된 소식을 발췌 및 요약 정리한 것이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 출처를 참고할 것. 소식의 자료 제공 및 원문 번역자는 박정선(파리 소르본 4대학 재학). 이 소식의 출처는 Scott Reyburn, ‘How MoMA and the CIA Conspired to Use Unwitting Artists to Promote American Propaganda During the Cold War’, 「Artnet News」, 2020. 9. 24. https://news.artnet.com/art-world/artcurious-cia-art-excerpt-1909623 [본문으로]